천안함 폭침 1년의 교훈

 

 

2010년 3월 26일 밤 9시22분경, NLL 남방 한국 측 해역의 수심 깊은 곳에 잠복해 있던 북한의 소형 잠수함은 초계중인 한국 해군 772함(천안함)을 향해 어뢰를 발사했다. 전시도 아닌 평시에 상대방의 군함을 예고도 없이 격침시켰다는 것은 가히 선전포고 수준의 도발이 아닐 수 없었다. 북한이 대한민국의 군함을 격침시키겠다는 대담한 의도를 실행에 옮긴 것은 대한민국을 우습게보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북한이 보기에 대한민국은 자국의 1,000톤급 군함이 격침을 당해도, 그래서 수십 명의 병사가 목숨을 잃어도, 감히 도발자에 대해 무력응징을 가하지 못하는 용기 없는 나약한 나라였던 것이다.
 

북한이 만약 대한민국을 다르게 생각했다면 감히 천안함 공격을 단행할 수 없었을 것이다. 북한은 천안함을 공격할 당시 천안함이 대한민국 군함이라는 사실을 확인, 또 확인했을 것이다. 천안함을 공격한 북한 잠수함 함장은 모든 잠수함 함장들의 꿈-즉 단 한 발의 어뢰 발사로 상대방의 군함을 두 동강내어 격침시킨다는-을 이루었다. 북한의 천암한 공격은 전술적으로 완벽한 작전이었다. 우리는 생존한 천안함 함장과 병사들을 패잔병 혹은 죄인 다루듯 했다.


대남 도발을 방지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하나 된 국민’


우리는 잠수함이 본질적으로 수상함보다 전술적으로 유리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했다. 잠수함은 10마일 이내에 있는 수상함을 볼 수 있지만 수상의 군함은 3마일 이내의 잠수함을 어렴풋이 찾아낼 수 있을 뿐이다. 동등한 조건에서 수상함이 잠수함을 이길 가능성이 낮다. 1, 2차 세계대전 당시 전체 해군력에서 영국과 상대가 되지 않던 독일은 잠수함이 있었기에 대등한 해전을 치를 수 있었다. 잠수함은 수상함에 비해 결정적으로 유리하다는 의미에서 비대칭 무기라 불리는 것이다. 마음먹고 덤비는 북한의 잠수함에 대해 전술적 승리를 거둘 수 있는 수상함은 별로 없다.


그래서 자국의 군함을 보호하는 일은 전투 현장에 있는 함장과 해군 장병들의 전술적 임무를 훨씬 초월하는 ‘국가’차원 혹은 ‘전략’차원의 임무이다. 중국의 잠수함들은 중국 해역을 향해하는 미국 군함을 능히 격침시킬 수도 있다. 그러나 중국이 그리 하지 않는 것은 미국의 군함이 격침당할 경우 미국이 무자비한 보복을 가해 올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미국이라는 국가가 미국의 군함들을 잠재 적국의 잠수함 공격으로부터 지켜주고 있는 것이다. 천안함 피격 사건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북한의 무력 도발을 ‘억제(deter)’하는 데 실패했던 사례이다.


북한이 또다시 도발할 수 없게 하기 위해서 북한의 잠수함과 대결할 수 있는 고성능 무기체계를 갖추는 것만으로는 역부족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다음 번 도발에 대해 북한은 수십, 수백 배의 응징을 받을 것임을 확신시키는 일이다. 물론 위정자의 단호한 의지 표명만으로도 불충분하다. 국민이 하나가 되지 않는다면, 북한을 두둔하는 국민들이 일정 수에 달한다면 어떤 단호한 의지 표명일지라도 허사(虛辭)가 될 뿐이다.


북한의 천안함 기습공격에 대해 우리는 작전적 차원의 대응에서도 실패했다. 기습을 기습으로 되받아치지 못했다는 말이다. 천안함의 격침이 북한의 소행이라는 과학적 근거를 발표하는 날(2010년 5월 20일) 대한민국 국민의 30% 정도가 정부 발표를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국회의원 70명은 천안함 관련 대북 규탄 결의안에 반대표를 던졌다. 2010년 9월 대한민국의 한 여론조사는 한국 국민들 중 절반 정도가 “천안함 공격이 북한의 소행”이라는 정부 발표를 믿지 않는다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보여주었다. 대통령이 5월 24일 발표했던 대북 경고는 말 그대로 아무 의미 없는 휴지 조각이 되어버렸다.


대한민국 국민들 중 상당수가 “아무리 나쁜 평화라도 전쟁보다는 낫다”라는 오도된 전략 사고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북한은 적극 활용했다. “아무리 나쁜 평화라도 전쟁보다 낫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묻겠다. 그렇다면 이완용은 이기지도 못할 일본과의 전쟁을 회피한 훌륭한 평화주의자인가? 또 묻겠다. 우리 모두가 김정일, 김정은 사진을 벽에 걸어놓고 살아야 하는 나라가 될지라도 전쟁만은 피해야 하는 것인가?


향후 대북 전략은 천안함에 대한 사과를 받아내는 일에서부터 시작해야


한국 국민 50% 이상이 천안함의 진실을 부정하는 상황에서 북한은 아예 대낮에 연평도를 포격하기로 작정했다. 대한민국 국민을 겁에 질리게 만듦으로써 한국 국민 스스로 대한민국 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바꿔놓게 만들 작정이었다. 11월 23일 대낮에 대한민국 국민들을 향해 무차별 포사격을 감행한 것이다. 한국은 이번에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그러나 연평도 포격 사건은 대한민국 국민들이 북한 정권의 실체와 국가안보의 중요성에 대해 깨닫는 계기를 제공했다. 천안함 1주기를 맞은 지금 한국 국민 중 80%가 천안함의 진실을 믿고 있다. 연평도 포격 이후 대북 경각심과 안보의식이 한층 높아진 대한민국 국민들은 북한이 적어도 당분간은 대남 무력도발을 자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조성했다.


군사회담을 하자고 조르던 북한은 ‘천안함 공격에 대한 사과’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우리 측 주장에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렸다. 그 후 북한은 한국과 대화를 하자며 백두산 폭발이라는 이슈마저 들고 나오고 있다. 북한은 한국 국민들의 대북 경각심을 무너뜨리기 위해 가능한 온갖 수단을 강구할 것이다. 평화와 대화를 강조하며 한국 국민들의 대북 및 안보 경각심이 약화되기만을 기다릴 것이다.


대한민국은 천안함과 연평도 포사격의 비극을 통해 북한의 대남 도발을 방지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하나 된 국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대한민국 국민을 분열시키고, 줄기차게 북한의 입장을 두둔함으로써 북한의 대남 도발 야욕을 키워 준 한국의 종북 좌파들은 급기야 남북 군사회담에서조차 ‘천안함 관련 사과’라는 전제가 해소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3월 23일). 북한 당국자가 천안함 공격이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인정한다는 말 한마디에 자신들의 운명이 걸려 있는 한국 내 좌파들의 불안감을 이해할 만하다.


북한 역시 천안함 공격이 자신들의 소행임을 인정하고 사과할 경우 가장 막강한 원군인 대한민국 내 종북 좌파들이 설 자리가 없어질 것을 잘 알고 있다. 북한 당국의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북한이 천안함 도발을 사죄하는 날, 대한민국은 진정 하나 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게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향후 우리의 대북 전략은 북한으로부터 천안함 도발에 대한 자백과 사과를 받아내는 일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이춘근

 

이글은 2011년 3월 28일자 한국경제연구원 KERI  칼럼으로 게재 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