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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바뀌는 계절은 가끔 중년에게 허무를 느끼게 한다. 녹록지 않은 희로애락의 삶을 소유했다면 더욱 그렇고 지는 낙엽이 그렇고 휑한 들판이 그렇다. 그러나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슬픈 게 아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그만큼 삶이 영글어 간다는 것이고 주름이 생긴다는 것은 생이 깊어진다는 것이다. 청춘이 푸른 잎사귀의 굽힐 줄 모르는 열정과 기개를 수평으로 유지하는 황금 비율의 천칭을 가졌다 해도 쉬이 꺾일 것 같은 갈대처럼 모진 바람에도 꺾이지 않는 부드러움은 모자란다. 아무리 싱싱한 젊음이라 해도 뻣뻣함 만으로 어찌 삶에서 곰삭은 인생의 맛을 낼 수가 있을까. 모진 생의 염전에서 길어 올린 소금으로 숙이지 못한 그 뻣뻣함을 숨죽여야만 사람 내음 나는 양념을 묻힐 수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해 보라. 푸르기만 하고 뻣뻣한 배추에 양념도 제대로 안 된 김치가 무슨 맛이 나겠는가. 인생은 김치와 같다. 밭에다 씨를 뿌리고 물과 거름을 때마다 주어 정성을 다해 키우고 테를 둘러서 배춧속을 영글게 해야 하며 서리가 내리기 전에 수확해서는 반으로 갈라 소금에 절이며 숨 재웠다가 씻어 물기를 빼고는 발효에 좋은 젖갈과 양념을 버무려 독 안에 차곡히 재웠다가 알맞게 익은 다음 먹어야 김치의 제맛이 살아나니 어찌 보면 인간의 생이 김치와 닮은 꼴이 아닌가. 설익은 인생이.. 덜 익은 김치가.. 제맛이 날까. 연륜이란 삶에서 묻어 나온 농익은 지혜로서 푸른 잎사귀 뻣뻣한 오만도 만추의 산등성이로 불게 타오르다 자연의 섭리에 의해 낙엽 되고 그 이듬해 다시 싹 틔움의 진리를 알게 해 준다. 산다는 게 그렇다. 나이를 먹는다는 게 그렇다. 인생이란 세월을 담으며 혜윰을 입어야 하고 담고 입은 것을 소화하는 잠을 자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배춧잎 같은 중년이라도 슬플 게 없다. 나이로 채워가는 인생은 오직 더 깊은 맛을 간직하기 위한 절임일 뿐이다. 중년의 생은 삶의 완성을 가지게 하는 소금일 뿐 우리가 슬퍼할 일도 안타까울 일도 아닌 축복의 절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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